2011/05/22 10:32 영화/영화 일기/리뷰
천녀유혼 (A Chines Ghost Story, 2011) - 요괴와 인간 사이의 사랑이 낳은 비극
천녀유혼의 첫 영화는 1987년에 나왔다. 장국영과 왕조현이 주연으로 나온 명작 영화다. 이 영화가 나왔을 당시 난 2살이었고, 주인공과 제목은 알고 있지만 끝내 지금까지 보지 못하였다. 그 시대를 산 사람들이, 남자라면 왕조현을, 여자라면 장국영을 각각 가슴에 품었다는 소문 정도만 알고 있었다.
오히려 내가 가지고 있는 천녀유혼의 이미지는 1997년에 나온 애니메이션에 가깝다. 이 애니메이션도 지금은 명작으로 남아있는 듯 하다. 한 소년과 요괴 소녀의 순수한 사랑이야기. 그것이 내가 가지고 있는 천녀유혼의 실루엣이었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들과 리메이크된 천녀유혼은 어떻게 다를까. 그냥 배우만 바뀐채 현대적 촬영 기법으로 재 연출한 작품에 지나지 않는 걸까. 원작을 보지 않았기에 섯불리 비교할 수는 없지만, 리메이크된 천녀유혼은 인물 구도에 변화를 주었다. 구도변화의 키는, 전작에서 퇴마사로 나왔던 연적하였다. 원작에서 연적하는 영채신역의 장국영을 도와주는 퇴마사 역으로 나온다. 대머리 아저씨인 그는, 어딜 보아도 로멘스와는 어울리지 않는 케릭터다. 새 천녀유혼에선 이 케릭터를 표면으로 끌고 올라와 주연의 자리를 내주었다. 그 자리는 섭소천의 과거 연인의 자리였다.
연적하는 섭소천과 사랑을 나누었던 사이다. 하지만 요괴와 인간의 사랑이 불가능함을 깨닿고, 연적하는 섭소천의 기억을 지운다. 그리고 섭소천이 살고 있는 낙약사에서 요괴들을 물리치며 멀찍이 기억을 잃은 섭소천을 바라보며 살아간다. 그런 둘의 관계에 영채신이 끼어들면서 사건은 꼬이게 된다. 처음에 영채신의 혼을 빨아먹기 위해 그에게 접근한 섭소천은, 맑은 영혼을 가진 그와 사랑에 빠지게 되고, 영채신도 섭소천의 아름다운 외모에 반해버리고 만다. 이 관계에서 영채신은 연적하와 섭소천의 슬픈 로멘스에 끼어든 방해꾼에 지나지 않는다.
영채신과 섭소천의 사랑 이야기, 그리고 연적하와 섭소천의 사랑 이야기가 동시에 드러나면서 새 천녀유혼의 이야기는 무언가 하나를 포기해야만 했다. 그것은 연인의 사랑이 키워지는 과정이었다. 연적하와의 관계는 완전히 생략된 채, ‘사탕’이라는 소도구 하나만을 가지고 둘 사이를 대표시킨다. 섭소천이 하는 ‘난 사탕을 주는 사람과 사귈거야.’따위의 대사는 유치하기도 하고, 그 수준에서 둘의 관계를 정리해버리는 것 같아 못마땅하기도 했다. 영채신도 마찬가지다. 여러 이벤트를 통해 둘이 사랑을 키워나간다기보단, 영채신이 무심코 내밀은 사탕이 촉발제가 된다. 이렇게 놓고 보면, 감독은 둘의 사랑이 어떻게 시작되었고 키워졌는가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어 보인다. 그보다 이 영화는 요괴와 인간의 사랑을 비극적으로 바라보는데 힘을 쏟았다.
다시 말해서 이 영화는 기존의 천녀유혼에 삼각구도라는 현대적 스토리 텔링을 적용한 영화다. 다만 그것이 얼마나 효과를 거두었을지는 의문이다. 갈등의 생산이란 점에서 삼각구도는 유용할 수 있으나, 그리고 연인의 사랑을 지켜볼 수 밖에 없는 연적하의 가슴찡한 사랑을 담을 수도 있겠으나, 그 갈등구조가 천녀유혼이라는 고전적 멜로에 얼마나 어울릴 수 있느냐를 놓고 보면 회의적인 느낌이 먼저 든다. 우선 이 삼각구도 자체도 현대 관객들에겐 큰 울림을 주지 못하는 진부한 구도이거니와, 그나마 있던 기존 천녀유혼 팬마저도 등을 돌릴만한 변화로 보인다. 섭소천과 영채신, 두 남녀의 사랑을 보러 극장을 찾은 관객은 이 진부한 TV드라마 같은 삼각구도에 어이가 없으리라.
게다가 이런 인물관계를 가졌으면서도, 영화에 등장하는 요괴에 대한 연출이나 곳곳에서 보이는 원작 천녀유혼에 대한 오마쥬는 도대체 이 감독이 어떤 쪽으로 방향을 잡은 건지 의문이 들게 만든다. 인물관계는 현대적, 이라기보단 근대적 방식으로 변화시켜놓고선 영화의 첫장면에 나오는 음악이라던가, 엔딩 크레딧은 원작의 것을 차용해왔다. 그리고 마지막엔 장국영을 추모한다는 식의 문구까지 띄워올린다. 남녀의 목소리가 섞이는 악랄한 요괴의 목소리라던가, 그의 과장된 웃음이라던가, 이런 것들은 꾸준히 재생산된 요괴의 모습을 그대로 따왔다. CG로 세련되어 지긴 했지만, 요괴와의 전투씬도 거의 서유기 월광보합과 같은 요괴물에 나오는 스타일 그대로다.
여러모로 감독의 의도가 보이지 않는 작품이었다. 과거의 작품을 오마쥬하고, 거기에 나왔던 연출을 그대로 따오면서도 정작 중심을 이뤘던 영채신과 섭소천의 사랑이야기는 분량을 줄이고, 거기에 연적하를 인물을 끼워넣어 삼각구도를 구축한 것. 원작을 현대적 영화로 재창작하면서도 그 의미는 퇴색시키지 않으려 한 작가의 당찬 포부일까. 다만 내가 보기에 이러한 방식은, 원작의 팬도, 그리고 새로 천녀유혼을 보는 관객도 모두 등을 돌릴만한 연출방법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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