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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녀유혼의 첫 영화는 1987년에 나왔다. 장국영과 왕조현이 주연으로 나온 명작 영화다. 이 영화가 나왔을 당시 난 2살이었고, 주인공과 제목은 알고 있지만 끝내 지금까지 보지 못하였다. 그 시대를 산 사람들이, 남자라면 왕조현을, 여자라면 장국영을 각각 가슴에 품었다는 소문 정도만 알고 있었다.



오히려 내가 가지고 있는 천녀유혼의 이미지는 1997년에 나온 애니메이션에 가깝다. 이 애니메이션도 지금은 명작으로 남아있는 듯 하다. 한 소년과 요괴 소녀의 순수한 사랑이야기. 그것이 내가 가지고 있는 천녀유혼의 실루엣이었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들과 리메이크된 천녀유혼은 어떻게 다를까. 그냥 배우만 바뀐채 현대적 촬영 기법으로 재 연출한 작품에 지나지 않는 걸까. 원작을 보지 않았기에 섯불리 비교할 수는 없지만, 리메이크된 천녀유혼은 인물 구도에 변화를 주었다. 구도변화의 키는, 전작에서 퇴마사로 나왔던 연적하였다. 원작에서 연적하는 영채신역의 장국영을 도와주는 퇴마사 역으로 나온다. 대머리 아저씨인 그는, 어딜 보아도 로멘스와는 어울리지 않는 케릭터다. 새 천녀유혼에선 이 케릭터를 표면으로 끌고 올라와 주연의 자리를 내주었다. 그 자리는 섭소천의 과거 연인의 자리였다.

연적하는 섭소천과 사랑을 나누었던 사이다. 하지만 요괴와 인간의 사랑이 불가능함을 깨닿고, 연적하는 섭소천의 기억을 지운다. 그리고 섭소천이 살고 있는 낙약사에서 요괴들을 물리치며 멀찍이 기억을 잃은 섭소천을 바라보며 살아간다. 그런 둘의 관계에 영채신이 끼어들면서 사건은 꼬이게 된다. 처음에 영채신의 혼을 빨아먹기 위해 그에게 접근한 섭소천은, 맑은 영혼을 가진 그와 사랑에 빠지게 되고, 영채신도 섭소천의 아름다운 외모에 반해버리고 만다. 이 관계에서 영채신은 연적하와 섭소천의 슬픈 로멘스에 끼어든 방해꾼에 지나지 않는다.



영채신과 섭소천의 사랑 이야기, 그리고 연적하와 섭소천의 사랑 이야기가 동시에 드러나면서 새 천녀유혼의 이야기는 무언가 하나를 포기해야만 했다. 그것은 연인의 사랑이 키워지는 과정이었다. 연적하와의 관계는 완전히 생략된 채, ‘사탕’이라는 소도구 하나만을 가지고 둘 사이를 대표시킨다. 섭소천이 하는 ‘난 사탕을 주는 사람과 사귈거야.’따위의 대사는 유치하기도 하고, 그 수준에서 둘의 관계를 정리해버리는 것 같아 못마땅하기도 했다. 영채신도 마찬가지다. 여러 이벤트를 통해 둘이 사랑을 키워나간다기보단, 영채신이 무심코 내밀은 사탕이 촉발제가 된다. 이렇게 놓고 보면, 감독은 둘의 사랑이 어떻게 시작되었고 키워졌는가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어 보인다. 그보다 이 영화는 요괴와 인간의 사랑을 비극적으로 바라보는데 힘을 쏟았다.

다시 말해서 이 영화는 기존의 천녀유혼에 삼각구도라는 현대적 스토리 텔링을 적용한 영화다. 다만 그것이 얼마나 효과를 거두었을지는 의문이다. 갈등의 생산이란 점에서 삼각구도는 유용할 수 있으나, 그리고 연인의 사랑을 지켜볼 수 밖에 없는 연적하의 가슴찡한 사랑을 담을 수도 있겠으나, 그 갈등구조가 천녀유혼이라는 고전적 멜로에 얼마나 어울릴 수 있느냐를 놓고 보면 회의적인 느낌이 먼저 든다. 우선 이 삼각구도 자체도 현대 관객들에겐 큰 울림을 주지 못하는 진부한 구도이거니와, 그나마 있던 기존 천녀유혼 팬마저도 등을 돌릴만한 변화로 보인다. 섭소천과 영채신, 두 남녀의 사랑을 보러 극장을 찾은 관객은 이 진부한 TV드라마 같은 삼각구도에 어이가 없으리라.

게다가 이런 인물관계를 가졌으면서도, 영화에 등장하는 요괴에 대한 연출이나 곳곳에서 보이는 원작 천녀유혼에 대한 오마쥬는 도대체 이 감독이 어떤 쪽으로 방향을 잡은 건지 의문이 들게 만든다. 인물관계는 현대적, 이라기보단 근대적 방식으로 변화시켜놓고선 영화의 첫장면에 나오는 음악이라던가, 엔딩 크레딧은 원작의 것을 차용해왔다. 그리고 마지막엔 장국영을 추모한다는 식의 문구까지 띄워올린다. 남녀의 목소리가 섞이는 악랄한 요괴의 목소리라던가, 그의 과장된 웃음이라던가, 이런 것들은 꾸준히 재생산된 요괴의 모습을 그대로 따왔다. CG로 세련되어 지긴 했지만, 요괴와의 전투씬도 거의 서유기 월광보합과 같은 요괴물에 나오는 스타일 그대로다.

여러모로 감독의 의도가 보이지 않는 작품이었다. 과거의 작품을 오마쥬하고, 거기에 나왔던 연출을 그대로 따오면서도 정작 중심을 이뤘던 영채신과 섭소천의 사랑이야기는 분량을 줄이고, 거기에 연적하를 인물을 끼워넣어 삼각구도를 구축한 것. 원작을 현대적 영화로 재창작하면서도 그 의미는 퇴색시키지 않으려 한 작가의 당찬 포부일까. 다만 내가 보기에 이러한 방식은, 원작의 팬도, 그리고 새로 천녀유혼을 보는 관객도 모두 등을 돌릴만한 연출방법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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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白虎


오늘 소개해드릴 맛집은 우돈리라는 이름의 의정부고기뷔페입니다.


사실 고기 뷔페를 맛집으로 소개해드리기 애매한 것이

다들 고기뷔페하면 좋은 이미지는 갖고 계시지 않을 게 뻔하기 때문이에요


돈은 없고, 고기는 맘껏 먹고 싶고

그래서 괜찮겠지 괜찮겠지, 맛있겠지 하면서

고기 뷔페를 찾아가면


꼭 한 입 먹고




이렇게 되기 십상이지요(.....)


불결하고, 가격도 그리 싸진 않고, 고기 질은 떨어지고

거기에 가격 보고 들어갔더니 밥 가격 따로에 국 가격 따로에...

그나마 기분 나쁠정도로 배를 채웠다는 걸 위로삼아

다신 안온다고 욕을 하며 발걸음을 돌리곤 합니다.


근데 의정부에 정말 괜찮은 고기부페가 있는 것 같아서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위치는 지도의 저곳이에요

경기도 의정부시 금오동 471-3 한솔프라자 2층에 위치해 있습니다

홈플러스에서 5분정도 거리라서 길 찾기는 어렵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 동네 빌딩들은 간판이 너무 많아서 @_@

유심히 찾아야 발견할 수 있어요



빌딩 2층에 걸려 있는 초록색 간판을 찾으시면,

저렇게 빌딩 입구에 입간판이 세워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가격은

성인은 13,900원

중/고등학생은 11,900원

초등학생은 9,900원

미취학생(4세이상)은 4,500원


요즘 고기뷔페가격을 생각해보면 적당한 가격입니다.



건물 2층으로 올라오면 보이는 2층 전경입니다.


옆에는 바가 있고, 그 앞쪽으로는 학원이 있는 것 같은데

그 학원의 원생들은 항상 풍겨오는 고기냄새 때문에 괴롭겠어요 ㅋㅋ



매장은 이렇게 널찍~합니다


제가 조금 일찍 갔던 터라, 아직은 손님이 없네요


아직 오픈한지 얼마 되지 않은 듯, 깔끔한 매장이었습니다.

자리마다 둔 방석때문에 어수선하긴 했는데,

한쪽에 쌓아두었더라면 더 깔끔하긴 했겠지만

손님 입장에선 일일히 가져다 깔아야 하는 방석이 불편할 수도 있겠죠.



한쪽으로는 이렇게 각종 도구며, 음식이 구비되어 있습니다



왼쪽에 보이는 밥솥엔

따끈따끈한 쌀밥과 된장국이 있어요

밥이랑 국에 돈을 받는 치사한 짓은 하지 않는다능!



오른쪽엔 이렇게 각종 식기들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고기접시며, 상추바구나, 수저, 집게, 가위등이 제각각 그릇에 잘 정돈되어 있어요

어린 아이들을 위해서 포크까지 준비해놓은 세심한 센스!



그리고 그 옆에는 이렇게 각종 장류가 구비되어 있습니다


쌈장도 일반 쌈장, 된장 쌈장 두 종류이고

머스타드 소스, 초고추장, 고추장, 심지어는 칠리소스까지 있어요

굵은 소금과 참기름은 당연히 있고요



이번엔 반찬과 해물입니다


파채를 비롯해서 김치, 옥수수 샐러드 등 각종 찬류가 보입니다

상추도 잔뜩 쌓여 있어서 눈치 안보이게 마음껏 집어다 먹을 수 있어요



이번에는 해산물입니다


새우와 갑오징어, 쭈꾸미에요

갑오징어와 쭈꾸미의 경우 주방에서 한 번 데쳐져서 나오기 때문에

불에 살짝만 데워 먹으면 된다고 사장님이 친절히 설명해 주시더군요 ㅎ


그럼 이제,

오래 기다리셨죠


이번에는 대망의!!!



꼬기!!!!


각 부위별 명칭과 산지가 말끔하게 붙어 있습니다

보면 볼 수록 마음에 드는 집이네요 ㅎㅎ


그럼 하나씩 고기를 감상해봅시다

고기의 때깔을 보면 맛도 짐작이 가능하다죠 ㅋ



우, 우와아아아아...



고기 먹을 생각에 신난

백군(26)과 뇽양(24)


종류가 너무 적은 거 아니냐고요?


이것저것 고기 비린내만 나고 맛도 없는 부위들만 잔뜩 가져다가

냉장고 그득 채워놓고 있는 채 하는 것 보다는

이렇게 정말 맛있는 부위들만 딱 있는게 더 나은 것 같아요


솔직히 고기 부페 가셔도...

항정살이니 뭐니 이런거 안드시잖아요?



그럼.. 룰룰루~♬

마음껏 고기를 퍼담습니다



첫 접시에요~ ㅎㅎ


양념안된 고기만 담아봤습니다

돼지 삼겹, 목살, 우삼겹, 등심이에요



지글지글


처음엔 불판 위를 고기로 몽땅 덮었는데,

곧 직원분이 오셔서 설명을 해 주시더군요


저 불판은 양쪽 끝이 가장 강하고

가운데는 불이 약하대요

구울때는 끝에서 굽고, 다 익으면 가운데로 몰라고 하시더군요



이 집은 숯불을 쓰지 않아요

가정에서 흔히 쓰는 전기그릴 같은 방식입니다


요즘엔 너도나도 숯불에 구워먹는 것 같은데

이런 가정식 구이판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았어요.

무엇보다 연기가 나지 않아서 좋더군요.

기름도 밑으로 잘 빠져나가서 깔끔하게 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릴부분도 코팅이 잘 되어 있는지,

판을 갈지 않고 사장님이 수시로 와서 판을 닦아 주셨습니다.

닦을 때마다 금방 새 것처럼 번쩍번쩍해지더군요 ㅋㅋ



금방 해치워버리고 두 번째 판입니다 ㅋㅋ


이번엔 해산물과 양념고기 위주로 편성해 보았습니다



지글지글


전체적으로 굉장히 우수한 맛이었습니다

물론 제대로된 고기집과 같은 맛을 기대하면 안되겠지만,

근래 가보았던 고기뷔페중에 가장 좋은 맛이었어요.


여자친구에게 뭐가 제일 맛있었냐고 물어보니

소고기라더군요-_-!

당연한 소리 아니냐고 반문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보통 고기부페의 소고기는 명목상일 경우가 많으니까요

말이 소고기지 그냥 고기껌일 때가 많잖아요 ㅋㅋ



보통 고기부페에 가면

생고기가 너무 맛이 없어서

나중에는 양념고기로 배를 채우게 될 때가 많은데,

여기선 양념고기보단 생고기를 먹게 되더군요


비록 수입산 고기들이었지만 부드럽고 맛있는 고기들이라

양념고기엔 별로 손이 가지 않았습니다



뒤늦게 버섯의 존재를 발견하여

투입해보았습니다 ㅎㅎ


왜 이 집엔 버섯이 없지! 라고 투덜거리고 있었는데,

구석에서 발견했습니다 =_=... 투정부릴 수 없게 만들어버리네요



밥솥에서 퍼온 밥과 된장국입니다


이제보니 밥과 국의 위치가 바뀌었네요(....)

미친듯이 먹느라 불편한줄도 모르고 퍼먹었습니다



반찬이랑 고기들이 모여 있는 쪽 벽에는

이런 식으로 안내문이 적혀 있어요 ㅎㅎ


고깃집에서 이런 카페같은 데코를 볼 줄이야 ㅋㅋ 귀엽네요



고기 말고 다른 메뉴도 판매하는 것 같군요

고기는 무제한 리필되고, 다른 요리도 추가 가능하니

회식이나 모임자리로도 안성맞춤이겠어요


굉장히 만족스러웠던 맛집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사장님이 친절하셔서 ㅎㅎ

마음 놓고 마음껏 고기를 집어먹을 수 있었어요


의정부 맛집 우돈리고기뷔페, 나중에 시간이 되시면 들러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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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白虎


대학 졸업 논문을 준비하면서 국립 중앙 도서관에 보관된 문학 관련 논문들을 뒤져볼 일이 많았다. 김영하에 관련된 논문들 중 유독 많은 부분을 차지했던 것이 ‘아랑은 왜’에 관한 논문이었다. 그 당시엔 단순히 그것이 그나마 조금 ‘오래된’ 소설이었기에 그런 것이리라고 넘어갔는데, 이제 생각해보면 그런 이유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김영하의 가장 오래된 장편은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였지만, 그것과 관련된 논문은 그리 많지 않았으니 말이다. ‘아랑은 왜’의 어떤 부분이 많은 석사과정 대학원생들의 구미를 당긴 것이 아니었을까.(박사 과정 논문은 주로 돌아가신 작가분들의 작품을 다루므로.)

‘아랑은 왜’는 흥미로운 구성의 소설이다. 그것은 소설이기 이전의 소설이면서 또 한편으론 소설 그 자체이다. 작가는 아랑 전설을 독자에게 제시하며 그것을 독자와 함께 재해석한다. 구비 설화 속에 숨어 있는 틈을 찾아 그 빈 공간을 메우고, 비튼다. 보통 소설가의 이 작업은 독자 앞에 작품을 내보이기 전에 이루어진다. 어떤 이야기를 만들지, 어떤 등장인물들을 창조해낼지, 어떤 것이 근거가 되어 이야기의 기둥이 되어 줄지. 하지만 작가는 뻔뻔하게도 그 모든 작업을 독자의 눈 앞에서 해치운다. 그는 아랑 설화의 여러가지 판본에 대한 이야기며, 당대의 사회상이며, 아랑 설화에서 숨겨져 있을지 모르는 여러 비화들을 노점 자판처럼 늘어놓고는 그것을 조립하기 시작한다.

독자는 이로써 소설 속에 능동적인 독자로 참여하는 듯 하다. 마치 작가는 독자를 설득해가며 이야기를 만들고 있는 듯 하므로, 독자는 작가와 함께 이야기를 만들어나가는 기분마저 든다. 하지만 이 소설은 소설 자체로 완성된 이야기이다. 소설을 만들어나가는 소설가의 작업은 소설 외적인 영역인 듯 하지만, 그 마저도 ‘아랑은 왜’라는 소설 안에 속한다. 이는 작가는 소설 밖에 존재하며 소설 안의 인물을 조종하기만 했던 기존 소설의 영역을 해체한다.




소설은 계속해서 아랑 전설에 질문을 던진다. 아랑은 도대체 왜. 아랑 전설에선 왜, 나비가 등장하는가. 혹은 나비 대신 붉은 깃발이 나오는 판본은 어째서 존재하는가. 아랑이 죽은 뒤에 밀양 고을의 부사는 왜, 관직을 버리고 도망갔는가. 아랑은 왜, 살해당했는가. 아랑을 살해한 사람은 누구인가. 아랑의 시체가 버려진 곳은 어디인가. 등등. 이 질문들은 끝없이 여러 가능성들을 생산해낸다. 가능성을 선택하는 것은 작가의 몫이지만, 여기서 중요한건 그 가능성들이 진실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쯤되면 소설 ‘아랑은 왜’는 이야기를 이야기하는 이야기가 된다. 작가는 ‘아랑은 왜’라는 이야기를 통해 이야기에 대하여 논하려 한다. 이상사의 대사 중에 이런 것이 있다.



“(…)관아의 담장을 넘어가면 또 다른 이야기가 만들어질 겝니다. 수산제가 무너진 것도 사실이고 사또들이 돌아가신 것도 사실이고 아랑이가 죽은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호장과 그의 딸 아랑과 안국이, 그리고 윤관 사이에 벌어진 일에 대해선 아무도 모릅니다. 그 중 셋은 죽었고 전임 사또는 행적이 묘연합니다. 후세는 아마도 이 일을 잊어버리거나 아니면 전혀 다르게 기록할 수도 있을 겁니다.” p.275


사실은 그것이 이뤄진 이후, 어떤 방식으로도 복원되지 못한다. 그것엔 듣고 본 자, 말하는 자의 주관이 섞이어 윤색되게 마련이다. 그것은 이야기의 특성이다. 작가는 자신의 그러한 의도를 더 밀어붙인다. 그는 20세기의 새로운 인물을 창조해 내었다. 그것은 박과 영주, 그리고 선운사 앞에서 큰줄흰나비의 박제를 파는 어린 소녀이다. 작가는 전체적인 이야기를 관조하는 부분, 재구성된 아랑 전설, 그리고 20세기에 새로이 쓰여지는 박과 영주의 이야기를 교차시켜 편집했다. 쉽게 설명하면 16세기와 20세기의 이야기를 적는 작가의 이야기를 쓴 셈이다.

여기서 작가는 16세기의 이야기와 20세기의 이야기를 연결시킬 것이라는 의도를 소설의 초반부에 언뜻 내비친다. 하지만 그것은 어떠한 연관도 없이 소설의 결말까지 치닫는다. 어떻게든 연관고리를 찾아보자면 20세기의 이야기에 아랑의 환생으로 보이는 여자 아이가 등장한다는 것 뿐이다. 소설 속의 작가는 작가는 고심하며 16세기의 아랑 살해와, 20세기에 일어난 영주의 죽음을 연결시키려고도 해보지만, 둘은 너무나도 다른 이야기라 연결될 거리가 없었다. 독자는 전혀 다른 두 이야기를 보는 기분으로 소설을 읽어나갈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작가는 두 이야기를 결국 어떻게 연결시켰을까. 20세기 이야기의 마지막에서 박은 선운사에서 본 아랑의 이야기를 적기 시작한다. 그것은 소설 속의 작가가 쓰려고 했던 소설의 전반부였다. 이로써 소설의 마지막은 소설의 전반부와 이어진다. 다시 말해 20세기의 박이 이 소설의 저자가 되는 셈이고, 이 소설의 저자가 다시 16세기와 20세기의 이야기를 적어나가는 식이다. 이 구성은 뫼비우스의 띠 형태가 되어 끝이 없는 이야기로 무한 회귀된다. 생각지도 못한 마무리였다. 그 마무리로 인해, 소설은 소설 내내 이어졌던 현실작가-소설-현실독자의 관계에서 해체되어 소설 속의 작가-현실 독자 관계로 변모되게 된다. 독자들은 소설을 읽는 내내 진짜 작가의 육성을 듣는 기분으로 소설을 읽어 내려가지만, 그 작가 또한 진짜 작가가 창조해낸 소설 속 인물일 뿐인 것이다.

과연 왜 많은 석사과정의 대학원생들이 이 소설을 자신의 석사 논문으로 선택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아랑 전설을 단순히 재구성해 재미있는 이야깃거리로 만들어낸 것에 머물지 않고, 작가는 이야기의 본질을 탐구하고 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분석할 거리가 튀어나오는 소설이었다.


아랑은 왜 - 10점
김영하 지음/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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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개월 전 친구에게 토르 개봉 소식을 들었을 때는 조금 당황했다. “토르? 토르라면 북유럽 신화 아냐?” 슈퍼히어로라면 배트맨, 슈퍼맨, 스파이더맨 정도만 알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고, 북유럽 신화와 슈퍼히어로 사이의 괴리감 때문이기도 했다. 쉽게 상상이 가지 않았다. 내 머릿속에서 토르는 커다란 덩치에, 턱을 뒤덮은 수염을 치렁치렁 내리고, 바이킹 복장을 한 채 망치를 휘두르는 이미지였기 때문이다. 굳이 인물을 꼽아보자면, 반지의 제왕의 ‘김리’정도?



신화 속의 토르는 붉은색 턱수염과 엄청난 주량, 힘으로 상징된다. 충동적이고, 우발적이고, 성급하고, 거칠고, 단순하다. 신화 속에서 가장 강력한 힘의 소유자이지만 그 불같은 성정이 오딘과 대비된다. 그런가하면 한 편으론 슈퍼히어로화 하기 가장 적합한 신이기도 하다. 그는 신이지만 대단히 인간적이다. 인간에게 호의적이고, 비와 바람을 다뤄서 농사를 주관한다. 그리고 그가 나오는 일화들은 조금 우스꽝스럽기도 해서 그 바보스러움이 친근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도 그러한 성격 이전에 ‘신’이기에, 이전의 슈퍼히어로들과 어떻게 섞일지 알 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내가 알고 있는 슈퍼히어로들이란 ‘평범한 인간’이지만 ‘과학의 힘’으로 우리들보단 강한 힘을 내는 자들이기 때문이었다.


이 작품을 논하는데 있어서 ‘어벤저스’를 놓치고 지나갈 수는 없다. 토르의 개봉은 ‘어벤저스’ 개봉을 위한 징검다리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스파이더 맨’과 같은 작품은 마블 스튜디오와는 관계 없이 판권만을 가지고 와서 만든 영화로 알고 있다. 때문에 이 케릭터들은 독자적인 세계관으로 구축이 되어 왔다. ‘스파이더 맨’은 ‘스파이더 맨’의 세계에, ‘X-MAN’은 ‘X-MAN’의 세계에 속해 있다는 식이다. 결국 지구가 배경이지만, 결국 이야기일 뿐이니까. 언제부턴가 마블 스튜디오가 직접 자신의 만화들을 영화화 하기 시작하면서, 영화 속에 ‘어벤저스’에 대한 암시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아이언 맨’에서는 토니 스타크의 뒤로 ‘캡틴 아메리카’의 방패가 나타나기도 했고, 영화 크레딧 뒤의 쿠키에 ‘토르’의 망치가 등장하기도 한다. ‘인크레더블 헐크’에서도 토니 스타크가 카메오로 직접 등장하기도 한다. 올해 여름엔 ‘캡틴 아메리카’도 개봉을 하는데, 이 또한 2012년으로 예정된 ‘어벤저스’라는 커다란 프로젝트를 위한 작업의 일환이었다. 이제 그 사업은 좀 더 구체적이 되었다. ‘토르’의 마지막엔 아예 대놓고 ‘토르’의 다음 이야기는 ‘어벤저스’에서 이어진다고 밝힌다.



리뷰를 작성하기에 앞서서 어벤저스에 대한 정보들을 찾아보았다. 하지만 70여년 동안 구축된 마블 코믹스의 세계관은 범인으로선 쉽게 파악하기 어려웠다. 다만 알 수 있는 건, 2012년에 아이언 맨, 헐크, 토르, 캡틴 아메리카 등을 한 스크린에서 볼 수 있다는 사실 뿐이었다. 심지어 각 영화에 나왔던 배우들이 그대로 모인다는 것. 분명 마블 코믹스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조금은 가슴이 뛸 법 하다. 매년 여름 팝콘을 씹으며 롤러코스터를 타듯 감상했던 블록버스터의 주인공들이 한 자리에 모인다니, 엄청나게 재미있는 영화가 될 것 같지 않은가. 다만, 그것만 가지고 이 영화 ‘토르’의 죗값을 청산해 줄 수는 없을 것 같다.

이 영화는 다름 이야기를 위한 징검다리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토르’가 어떤 인물인지, 어떤 배경을 가지고 있는지, 또한 어떻게 인간적인 고뇌를 딛고 인간을 위해 싸우는 히어로로 설 수 있었는지, 그리고 그의 숙적이 될 ‘로키’와는 어떤 관계인지. 영화는 모든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것에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한다. 영화는 아스가르드라는 신들의 세계를 소개하고, 지구에 침략한 거인족들을 몰아낸 신들의 싸움을 그리고, 먼 시간이 흘러 거인족들과의 전쟁을 불사하며 그들의 본거지에 뛰어든 토르가 평화를 깨드리고 혼란을 초래했다는 이유로 오딘에 의해서 지구로 추방당하는 이야기에 거의 반 정도의 시간을 소모한다. 그리고 남은 반을 자신의 무기인 ‘묠니르’를 잃어버려 신적인 힘을 잃어버린 그가, 진정한 신으로서의 지위를 얻는 과정을 그리는데 소비한다.

간간히 눈을 현혹시키는 CG들이 등장하긴 하지만, 관객들이 흔히 기대할 법한 히어로물에서의 전투씬은 등장하지 않는다고 봐도 무방하다. 후반부에 로키가 토르를 제거하기 위해 지구로 얼굴에서 불기둥을 쏘아대는 이상한 놈을 보내지만, 그 놈은 망치를 다시 손에 쥔 토르의 불쌍한 희생물이 되어버린다. 중간중간 끼어있는 여 주인공과의 로멘스까지 고려한다면, 이 영화는 뒤에 이어질 이야기의 전반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인상이었다. 더 극단적으로 이야기하면 ‘케릭터 소개’ 정도로 보면 되겠다.

그래도 이런 영화에 무엇을 바라랴. 분명 이 영화는 블록버스터가 전무했던 요즘 극장가에는 단비와 같다. 생각 없이 푹신한 극장 시트에 몸을 내맡기고 팝콘을 씹으며 볼 팝콘 무비로서는 더할나위 없는 영화인 것이다. 이어서 나올 뒷 이야기에 대한 기대감도 마음껏 증폭시켜준다. 영화를 보러 가시는 분들은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엔딩 크레딧 뒤에 나오는 쿠키도 보는 것이 좋겠다.


토르: 천둥의 신 - 6점
케네스 브래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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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白虎


파우스트는 방대하다. 이는 플롯과는 조금 다른 문제인데, 파우스트엔 너무나도 많은 주제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첫 장을 펴면서 나는 여지껏 그래왔던 것 처럼, 노트와 펜을 챙겼다. 맘에 드는 문장을 발견하면 노트에 옮겨적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나는 몇 장을 채 넘기기 전에 그것을 포기해야만 했다. 이 희곡은 내가 지금까지 접해온 희곡들과는 스타일이 달랐다. 스타일의 문제일까? 괴테가 희곡을 쓴 방향성이 기존 희곡들과의 방향성과는 많이 다르다는 인상이었다. 기존 희곡들의 대사들이 이야기 진행을 위한 것이라면, 혹은 케릭터를 만들어내기 위한 것이라면, 파우스트의 대사들은 그 하나하나가 괴테의 사상의 집약체였다. 차마 나는 어느 한 줄에 밑줄을 그을 수가 없었다. 수 많은 문장 중에 하나를 도드라지게 만들 수가 없었다.


파우스트를 읽으면서 했던 나의 가장 큰 실수는, 이 작품의 이야기를 파악하려고 했다는 것이고, 그 다음 실수는 이 작품을 빨리 읽어버렸다는 것이다. 현대문학5월호에 실린 정명환 씨의 단상을 보면 텍스트의 극히 작은 한 부분이, 심지어는 하나의 단어가 상상의 비약의 계기가 된다( p.173)는 말이 있다. 그런 점에서 파우스트는 보물상자다. 12,111행에 달하는 이 작품은, 그 행 하나하나가 다른 사고, 사상으로 도약할 수 있는 디딤판의 역할을 한다. 그것은 인간의 모든 분야에 닿아 있다 문학, 철학, 종교, 정치, 전쟁. 괴테는 욕심쟁이였다. 한 주제의 이야기를 위해서도 아깝지 않을 분량에, 그는 모든 것을 집어넣으려고 했다. 그러다보니 모든 사족은 잘려나가고 사상의 집중이 극대화되어 몇 가지 문장만이 남게 되었다. 심지어 괴테는 부부간의 일까지 이야기한다.



오베론    부부간에 금실 좋게 지내려는 자,    4243행
             우리 두 사람의 본을 받아라!
             두 사람이 사랑을 해야 한다면,
             헤어져서 살아볼 필요가 있다,



파우스트 전설과 괴테의 파우스트는 다르다. 파우스트라는 인간과, 메피스토펠레스라는 악마, 그리고 둘 간의 계약이라는 모티프를 따오긴 했지만 둘은 전혀 다른 이야기이다. 파우스트 전설은 비극이지만, 괴테의 파우스트는 과연 비극인가?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이 이야기를 하기 위해선 파우스트 전설을 이야기하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파우스트는 독일에 실존했던 인물이다. 그는 인간으로써 섭렵할 수 있는 모든 학문과 재주를 가졌음에도 만족하지 못했다. 악마는 이승에서 인간으로서는 맛볼 수 없는 최고의 정신적, 육체적 쾌락을 맛보게 해준다며 그를 꾄다. 파우스트는 만약 악마가 자신의 욕망을 만족시켜준다면 24년 뒤 저승에서는 그의 영혼을 악마가 가져간다는 계약을 맺는다. 그는 마술의 힘을 빌려 향락을 누리지만, 결국 만족하지 못한다. 악마는 고대 그리스의 미녀 헬레나를 마술로 재현한다. 파우스트는 그 아름다움에 홀려 그녀를 포옹하지만, 헬레나는 모습이 반하여 그를 지옥으로 끌고간다. 24년의 계약기간이 끝났기 때문이었다.


여기서의 파우스트는 결국 악마의 꾐에 넘어가 영혼까지 빼앗긴 비극적인 인물로 묘사된다. 하지만 괴테의 파우스트는 다르다. 그도 역시 학문에서 얻을 수 없었던 새로운 차원의 쾌락을 느끼기 위해 메피스토펠레스와 계약을 맺지만, 그에게 영혼은 빼앗기지 않고 구원 받는다. 파우스트에서 나타나는 비극은 어디까지나 지상의 비극이다. 1부에 나타나는 그레첸 비극이 단적인 예이다.


파우스트는 젊은이로 변하여 그레첸이란 처녀를 사랑하게 된다. 그레첸을 본 첫 날 그녀를 갈망하여 집까지 찾아간 파우스트에게, 그레첸도 마음을 내어준다. 하지만 메피스토펠레스의 농간으로 그녀는 어머니를 살해하고, 파우스트는 그레첸의 오빠를 죽인다. 게다가 그레첸은 자신과 파우스트의 아이를 강물에 버리기까지 한다. 인정받지 못한 관계에서 태어난 아이는 사회적인 매장을 뜻하던 시대였다. 그레첸은 감옥에 갇혀 이성을 잃는다. 파우스트는 메피스토펠레스의 힘을 빌려 그녀를 구하러 가지만, 그녀는 감옥에서 광기에 사무쳐 파우스트를 알아보지 못하다가, 메피스토펠레스의 모습을 보고는 그 악마의 본질을 두려워하며 자신의 몸을 신에게 내맡긴다.



마가레테    아버지시여, 저는 당신의 것이옵니다! 구원해주소서!    4607행
                천사들이여! 천상의 거룩한 무리들이여,
                내 주위를 에워싸고, 나를 보호해주소서!
                하인리히(메피스토펠레스)! 전 당신이 무서워요.



천상에선 ‘구원되었도다!’라는 목소리가 들린다. 이처럼 그레첸은 지상에선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하지만 천상에선 구원된다. 물론 종교적인 느낌을 지울 수는 없지만, 구원과 타락이라는 대주제를 앞에 놓고 보았을 때, 그녀의 마지막이 정말로 비극이었나는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파우스트의 마지막도 그렇다. 그는 나이가 들어 바닷가의 땅을 다스리게 된다. 황제의 밑에서 여러 사업을 해서 인정을 받기도 하고, 전쟁에 나가 공을 세우기도 하고, 미의 여신 헬레나를 만나기도 했지만 결국엔 채워지지 못했던 그의 욕망은 그 바닷가 마을에서 비로소 채워진다.


그는 자신이 만든 땅에서 수많은 백성들이 자유롭게 살아갔으면 하는 바람을 가진다. 그는 바다를 밀어내고 둑을 쌓고 운하를 만든다. 정원을 만들고 궁전을 만들고, 백성들에게 토지를 나눠준다. 결국엔 눈까지 멀어버리지만 그는 자신의 사업을 멈추지 않는다. 자신이 만족했을 경우 ‘멈추어라, 너 정말 아름답구나!’라고 외치기로 매피스토펠레스와 계약한 그는 삶의 막바지에 다다라 이러한 결론을 내린다.

파우스트    자유도 생명도 날마다 싸워서 얻는 자만이,    11575행
                그것을 누릴 만한 자격이 있는 것이다.
                (중략)
                자유로운 땅에서 자유로운 백성과 더불어 살고 싶다.    11580행
                그러면 순간에다 대고 나 이렇게 말해도 좋으리라.
                멈추어라, 너 정말 아름답구나!



전제주의 국가를 넘어선 공화국이라는 미래적 국가체제를 염원하며, 그는 눈을 감는다. 메피스토펠레스는 파우스트의 영혼을 얻어낸 것에 만족하지만, 불현듯 천사들이 나타나 파우스트의 영혼을 데리고 올라가버린다. 그는 구원받은 것이다. 메피스토펠레스와 일생을 방황하며 갖가지 세속적인 것들을 체험하지만, 그것에 만족하지 않으며 더 높은 이상향으로 나아갔던 그는 결국 고차원적인 존재가 되어 메피스토펠레스를 떠나갔다. 이로써 괴테는 파우스트 신화를 단순한 비극에서 건져내어 언제까지나 노력하고 열망하는 존재에 대한 주제의식을 심어내었다.



오래도록 남는 고전이란 그런 것이다. 세월이 흘러도 퇴색되지 않는 보편적 가치를 구현해내고 있는 것. 그리고 대를 이어 읽어도 바래지 않는 깊은 사상이 담긴 것. 혹은 몇 번을 읽는다고 해도 만족되지 않는 가치가 있는 것. 파우스트는 나이가 들어서 다시 읽으면, 읽을 때마다 다른 방식으로 다가올 것만 같은 작품이었다. 그리고 작품이 다루고 있는 사상적 폭은 너무도 넓고, 분량 안에 담긴 주제는 넘칠 정도로 많아서, 오랜 기간 어딘가에 체류해야 할 때 단 한권의 책을 들고가야 한다면 주저 없이 파우스트를 챙길 것만 같다. 긴 시간 한 행 한 행을 되새김질하듯 입에 물고 곱씹으며 읽어야 할 책인 것이다.



파우스트 1 (반양장) - 10점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이인웅 옮김/문학동네

파우스트 2 (반양장) - 10점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이인웅 옮김/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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